2026년 여름은 유난히 덥네요. 낮에는 잠깐 밖에 서 있는 것도 부담스러울 정도라 주말이면 자연스럽게 시원한 곳부터 찾게 됩니다. 저희 가족이 여름철 자주 가는 곳 중 하나가 바로 하동 세이암계곡입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해마다 찾았던 곳이라 우리에게는 특별한 여행지라기보다는 여름철 항상 방문하는 장소로 인식하지요.
그런데 올해 세이암계곡은 예전과 많이 달랐습니다. 일요일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 도착했는데 계곡 옆 가게들에 있는 평상을 하나도 구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습니다. 결국 사람들이 많이 모르는 위쪽으로 약 200m를 더 올라갔고, 그곳에서 뜻밖의 물놀이 장소를 발견했습니다. 이번에는 그날의 경험을 중심으로 세이암계곡을 조금 다르게 즐겼던 이야기를 남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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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마다 세이암계곡을 찾게 되는 이유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최치원은 신라 말 혼란스러운 세상을 떠나 지리산으로 들어가던 중 화개천의 맑은 물에 귀를 씻었다고 합니다. 세속에서 들었던 어지럽고 좋지 않은 말까지 씻어내고 산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였다고 하지요. 그리고 그가 귀를 씻었던 계곡의 바위에 ‘세이암(洗耳巖)’이라는 글자를 남겼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세이암을 갈 때마다 나누는 이야기라 우리 아이들은 이미 익숙합니다.
보통 세이암계곡을 찾아갈 때는 화개초등학교 왕성분교장 방향으로 올라갑니다. 네비게이션으로 이 지역 이름을 치고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멋진 계곡이 쭉 펼쳐집니다. 이 물길은 아래쪽 화개천까지 연결되고 경치가 장관입니다. 특히 여름철에는 푸릇한 나무들과 같이 어우러져 여름의 향기가 물씬하지요.
저희 가족이 세이암을 계속 찾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맑은 물과 계곡 주변의 나무 그늘입니다. 한여름에도 물에 발을 담그면 금방 시원해지고, 계곡 주변에는 나무가 많아 물놀이 중간중간 쉬어가기에도 좋습니다. 간단한 음료 등을 싸서 가면 몇시간 더울 때 놀다 오기에도 좋았지요.
아이들이 어릴 때는 튜브를 타고 노는 것만으로도 좋아했는데, 조금 크고 나서는 물고기를 찾거나 물속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는지 물고기 잡기에 푹 빠졌습니다. 물이 맑은 날에는 계곡 바닥의 돌까지 보일 정도도 물고기의 사이즈도 매우 커서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물속 생물을 찾아보는 곳입니다.
예전에는 지역 주민이나 하동을 자주 찾는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계곡이라는 느낌이 강했는데, 최근에는 SNS에서 세이암계곡 사진과 영상이 많이 보이면서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 것 같습니다. 올해 직접 방문해 보니 그 변화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2. 일요일 오전10시 평상 구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
작년에는 오전 9시쯤 세이암계곡에 도착했습니다. 그때는 평상을 두 개 정도 여유 있게 잡아서 아이들과 편하게 물놀이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도 오전 10시 정도면 괜찮겠다고 생각하고 그쯤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입구부터 차량이 많았고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졌습니다. 평상을 운영하는 곳마다 혹시 자리가 있는지 물어봤지만 이미 모두 예약되거나 이용 중이었습니다. 심지어 주인분이 "지금은 대통령이 와도 평상 못 구해!"라는 말을 하시더라고요.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실감 났습니다.
결국 평상이 있는 끝쪽까지 올라갔지만 하나도 구하지 못했습니다. 계곡 안의 모습은 더 놀라웠습니다. 평소에는 바위 사이로 아이들이 띄엄띄엄 놀던 곳인데 이날은 사람이 가득했습니다. 사람들이 빽빽해서 수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남편과 계곡을 내려다보며 "이 정도면 계곡이 아니라 목욕탕 수준인데?"라고 이야기할 정도였습니다. 요즘 세이암계곡이 인스타그램에서 핫한 곳으로 알려졌다더니 정말 그런가 싶었습니다.
남편이 일주일 전 오토바이를 타고 이 길을 지나면서 조금 위쪽에 계곡을 일시적으로 개방한 곳을 봤다고 해서, 그곳으로 가보기로 합니다.
3. 기존 계곡에서 200m 위, 뜻밖에 발견한 물놀이 장소
평소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는 세이암계곡의 끝부분에서 위쪽으로 더 올라가면 지리산국립공원 구역이 이어집니다. 평소에는 계곡 출입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저희도 그 위쪽 계곡에서 물놀이를 해볼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방문했던 날에는 현장에 일시적으로 계곡을 개방한다는 안내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남편이 미리 보지 않았다면 저희 역시 모르고 지나쳤을 것 같습니다. 주변 지역 주민들에게도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듯했습니다.
기존 세이암계곡에서 약 200m 정도 더 올라가니 도로변에 이미 몇 대의 차량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이미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왔더군요. 왼쪽 아래를 내려다봤더니 큰 나무 아래 돗자리를 펴고 쉬는 가족들이 보였고 아이들은 계곡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래쪽과 비교하면 사람이 훨씬 적어서 저희도 짐을 챙겨 내려갔습니다. 다만 계곡까지 내려가는 길은 조금 험했습니다. 경사가 있고 미끄러운 부분도 있어 짐을 들고 내려갈 때 조심해야 합니다.
실제로 둘째가 짐을 들고 내려가다가 발을 헛디뎌 미끄러질 뻔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방문한다면 슬리퍼보다는 발을 단단하게 잡아주는 아쿠아슈즈를 신는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또한 이 구간은 평소 상시 개방되는 일반적인 물놀이 장소와는 다릅니다. 저희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현장 안내에 따라 이용했지만, 국립공원 구간의 출입 가능 기간과 위치는 달라질 수 있으므로 방문 전 공식 안내와 현장 표지판을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4. 물고기 쫓고 튜브 타며 하루를 보낸 세이암계곡
힘들게 아래까지 내려왔지만 물을 보는 순간 올라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이 정말 깨끗했고 바닥에 있는 돌이 훤히 보여서 물속에서는 작은 물고기들도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튜브를 타다가 물고기를 발견하면 어느새 튜브에서 내려 물고기를 쫓아다녔습니다. 수영도 하고 물총을 가지고 서로 장난을 치면서 꽤 오랜 시간을 놀았습니다. 큰 나무들이 만들어주는 그늘도 있어 물놀이를 하다가 추워지면 돗자리로 올라와 쉬기 좋았습니다. 저는 돗자리에서 낮잠을 20분 정도 잤는데 공기가 좋으니 2시간을 잔 것처럼 개운했습니다.
저희는 이날 튜브와 물총, 음료, 빵과 과자를 챙겨 왔습니다. 이곳은 취사가 가능한 곳이 아니기 때문에 버너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대신 집에서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담아 컵라면을 가져왔습니다.
물놀이를 한참 하고 나니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고 해서 빵과 과자를 꺼내 먹고 컵라면도 하나씩 먹었습니다. 계곡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먹는 라면은 집에서 먹을 때와는 또 다른 맛이었습니다. 아이들도 금방 한 그릇을 먹고 다시 튜브를 들고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처음에는 평상을 하나도 구하지 못해서 조금 당황스러운 하루였지만, 미리 지리산국립공원 계곡을 일부구간 개방을 한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여유롭고 한적하게 계곡을 즐길 수 있었지요.
올해처럼 더운 여름에는 하동 계곡을 찾는 사람이 더 많아질 수 있습니다. 기존 세이암계곡에서 평상을 이용하고 싶다면 주말에는 오전 일찍 움직이는 편이 좋겠습니다. 한시 개방 구간을 이용한다면 출입 가능 여부를 먼저 확인하고, 취사 금지 등 국립공원 이용수칙도 지켜야 합니다.
해마다 찾던 세이암계곡이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여름 하루를 보냈습니다. 맑은 물에서 물고기를 쫓아다니던 아이들과 나무 그늘에 앉아 컵라면을 먹었던 시간이 올해 세이암계곡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