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에 우리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한 뒤로, 친정엄마는 한 번씩 집에 놀러 오실 때마다 인근의 사찰들을 찾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삼으십니다. 독실한 불교 신자이신 엄마에게 지리산 자락의 쌍계사나 화엄사는 너무 좋은 장소입니다. 이번 방문에서 엄마가 꼭 가보고 싶다고 하신 곳은 바로 오산 꼭대기에 자리한 '사성암(四聖庵)'이었습니다. 다행히 구례 산수유 축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이라,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어머니와 단둘이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1. 사성암의 역사와 내력
사성암은 백제 성왕 22년(544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유서 깊은 곳입니다. 본래 오산암이라 불렸으나, 신라 시대의 원효, 의상대사와 도선국사, 고려 시대의 진각국사 등 4분의 성인(四聖)이 이곳에서 수도하였다 하여 '사성암'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명승 제111호로 지정될 만큼 자연경관과 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이곳은, 단순한 유적이라기 보다는 조상들의 정신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지요. 특히 이곳의 백미는 거대한 암벽 속에 부처님이 깃든 듯한 '마애여래입상'입니다. 3.9m 정도의 크기 원효대사가 손톱으로 그렸다는 신비로운 전설이 내려오는데, 사실 저는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정교한 형상을 보고 있으면 천 년 전 이 험준한 바위산에서 도를 닦던 성인들의 의지가 느껴지는 듯 했습니다. 큰 절이 아니라서 천왕문, 사천왕상 등은 없지만 절별 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듯한 암자의 모습은 신비로웠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오랜 세월 전란과 풍파를 견뎌온 단단한 역사가 흐르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바위와 지형 그래도 암자가 있는 느낌이라 자연과의 조화로움 속에서 그대로 우리가 놓여져 있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2. 소원바위 소원빌기
사성암에 올라가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수많은 이들의 염원이 담긴 '소원바위'입니다. 바위 주변으로 소원을 적은 수많은 태그가 달려 있는 것을 보니, 나도 하나쯤은 걸어야 할 것 같은 묘한 압박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독교인이기에 그저 묵묵히 그 풍경을 지켜보았습니다. 반면, 우리 엄마는 소원바위 앞에서 두 손을 정성스럽게 모으고 간절히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저는 엄마가 어떤 기도를 하셨는지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부모의 마음이 다 그렇듯, 분명 자식들의 건강과 우리 가족의 안녕을 비셨겠지요. 저는 옆에서 가만히 불상을 바라보았습니다. 정교하면서도 오묘한 표정을 지닌 불상을 한참 쳐다보고 있자니, 종교를 떠나 이 공간이 주는 평온함에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만약 저도 이곳에서 소원을 빌었다면, 엄마와 다르지 않게 우리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빌었을 것입니다. 마음속으로 짧고 소박한 기도를 올리며 바라본 구례의 풍경은 하동에서 느끼던 것과는 또 다른 광활함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굽이치는 섬진강과 구례 읍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절경 앞에서, 엄마와 저는 서로 다른 신념과 종교를 가졌을지언정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이 곳에서 같은 소원을 빌었습니다.
3. 사성암 방문 시 주의사항 및 이용 팁 (올라가는 방법)
사성암은 그 절경만큼이나 올라가는 길이 독특하고 가파릅니다. 쾌적한 방문을 위해 아래 팁을 꼭 확인해 보세요.
- 올라가는 법 (셔틀버스 필수): 사성암은 길이 매우 험하고 좁아 개인 차량 진입이 엄격히 금지됩니다. 산 아래 '사성암 주차장(죽마리 광장)'에 주차하신 후, 전용 셔틀버스나 택시를 이용해야 합니다. (셔틀버스 요금: 대인 왕복 약 3,400원)
- 운행 시간: 보통 오전 8시부터 오후 5~6시까지 운행하며, 배차 간격이 짧아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 관람 시 주의사항: 경내가 매우 가파르고 계단이 많습니다. 어머니처럼 연세가 있으신 분들과 함께라면 반드시 편한 운동화를 착용하시고, 무릎이 불편하신 분들은 약사전(유리광전)까지는 무리하지 않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 추천 시간대: 산수유 축제 기간에는 셔틀버스 대기 줄이 매우 깁니다. 사용자님처럼 축제 전후 평일에 방문하시면 가장 여유로운 관람이 가능하며, 해 질 녘 일몰 풍경은 놓칠 수 없는 포인트입니다.
내려오는 길, 엄마는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음에 산수유 꽃이 만개할 때 또 오자"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셨습니다. 기독교인인 딸과 불교인인 어머니가 함께 사찰을 걷는다는 것. 이상하게 느껴질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엄마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하고 엄마의 간절한 기도를 곁에서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방문이었습니다.
하동의 우리 집 거실 창으로 보이는 지리산 능선처럼, 사성암에서 바라본 구례의 풍경도 이제 제 마음속의 한 페이지로 남았습니다. 화려한 꽃축제의 소음보다, 꽃망울이 맺히기 전 어머니와 조용히 나누었던 그날의 대화가 더 향기롭게 느껴집니다. 여러분도 소중한 부모님과 함께, 사성암 여행을 떠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 위치: 전라남도 구례군 문척면 사성암길 303
- 이용 요금: 사찰 입장료 무료 / 셔틀버스 유료(왕복)
- 주요 명소: 약사전(절벽 위 전각), 소원바위, 마애여래입상
- 방문 포인트: 굽이치는 섬진강 뷰와 지리산 노고단을 한눈에 조망하는 최고의 차경(借景)
